반도체 기업의 RSWT 도입 성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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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폐기물을 자원으로 바꾸다
“이 폐기물 속에 광물이 들어있다고?”
2020년 여름, 삼성전자 환경안전센터에서 시작된 작은 의문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매일 수백 톤씩 발생하는 반도체 폐수 침전물. 그동안 시멘트 공장으로 보내 처리하던 이 골칫거리가, 철강업계가 연간 수십억 원을 들여 해외에서 수입하던 필수 광물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문제의 발견: 반도체 공정이 만든 거대한 폐기물 산

삼성전자 기흥·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폐수가 발생합니다. 웨이퍼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백 번의 세정 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에서 불산(HF), 황산, 질산 등 다양한 화학물질이 사용됩니다.
이 폐수들은 ‘그린센터’로 불리는 첨단 폐수 처리 시설로 보내져 평균 12시간의 정화 과정을 거칩니다. 6종으로 구분된 폐수는 물리화학적 특성별로 최적의 공법으로 처리되며, 중앙 통제실에서 실시간 모니터링됩니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처리 시스템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폐수슬러지(침전물)**였습니다.
폐수를 중화하고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이 침전물은 반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전체 폐기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연간 수만 톤에 달하는 슬러지는 시멘트 공장으로 보내져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되었지만, 재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처리 비용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폐기물 재활용률 100%’를 목표로 세우고 새로운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현대제철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운명적 만남: 폐기물과 수입 광물의 만남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에서 고품질 철강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형석(Fluorite, CaF₂)**이라는 광물을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형석은 제강 공정에서 두 가지 핵심 역할을 합니다.
첫째, 쇳물에 투입되면 CaF₂ 성분이 쇳물의 녹는점을 낮춰 황(S)과 인(P) 같은 불순물 제거 반응을 촉진합니다.
둘째, 슬래그에 투입되면 역시 CaF₂ 성분이 슬래그의 녹는점을 낮춰 쇳물 속 불순물을 더욱 효과적으로 흡수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형석을 전량 해외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미와 중국에서 들여오는 형석은 연간 약 2만 톤, 구매 비용만 수억 원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으로 가격 변동성도 컸습니다.
현대제철 연구팀은 “형석과 유사한 성분을 가진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중, 삼성전자의 반도체 폐수슬러지에 주목했습니다. 불산을 사용하는 반도체 공정에서 나온 침전물이라면 불소(F) 성분이 풍부할 것이고, 중화 과정에서 칼슘(Ca)도 함유되어 있을 테니 혹시…?
유레카: 50~60% 플루오린화칼슘 발견
020년 8월, 삼성전자, 현대제철, 재활용업체 제철세라믹 3사가 기술협약을 체결하고 공동 연구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연구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폐수슬러지의 정밀 성분 분석이었습니다. X선 형광분석(XRF), X선 회절분석(XRD), 열중량분석(TGA) 등 다양한 분석 기법을 동원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폐수슬러지의 주성분이 플루오린화칼슘(CaF₂)으로, 함량이 50~60%에 달한다!
이는 천연 형석의 주성분과 동일했습니다. 게다가 순도도 상당히 높아 추가 정제만 거치면 제강 공정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삼성전자 DS부문 환경안전센터의 장성대 전무는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불산(HF)이 폐수 처리 과정에서 칼슘과 결합하여 CaF₂를 형성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형석을 대체할 만큼 가치 있는 자원이 될 줄은 몰랐다”며 당시의 놀라움을 회상했습니다.
8개월의 도전: 실험실에서 제철소까지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실제 제강 공정에 적용하기까지는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1단계: 성분 표준화 (2020년 9월~11월)
반도체 공정은 매일 똑같이 진행되지만,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은 제품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폐수슬러지의 성분도 배치(batch)마다 편차가 있었습니다.
제강 공정에 사용하려면 CaF₂ 함량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연구팀은 여러 배치의 슬러지를 혼합하고, 불순물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공정을 개발하여 CaF₂ 함량 55±5%의 균질한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2단계: 물리적 특성 최적화 (2020년 12월~2021년 2월)
슬러지의 입자 크기, 밀도, 유동성 등도 제강 공정에 맞춰 조절해야 했습니다. 너무 고운 분말은 작업장에 날리고, 너무 큰 덩어리는 쇳물에 균일하게 분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분쇄-분급-펠렛화 공정을 통해 최적의 입도 분포를 가진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업체 제철세라믹의 노하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3단계: 실증 시험 (2021년 3월~4월)
2021년 4월, 드디어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강공장에서 30톤의 폐수슬러지 재활용품을 실제 쇳물에 투입하는 실증 시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나온 결과는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 슬래그 유동성: 천연 형석 사용 시와 동일
- 불순물 제거율: 황(S) 99.2%, 인(P) 98.7% 제거 (기존 대비 동등 이상)
- 철강재 품질: KS 규격 완벽 충족, 강도·인성 모두 양호
- 공정 안정성: 설비 부식, 온도 이상 등 문제 전혀 없음
현대제철 연구개발·품질본부장 최주태 전무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실증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이제 형석 수입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까다로운 인증: 국가의 승인을 받다
기술적 성공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재활용은 반드시 재활용환경성평가를 통과해야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2016년 7월 폐기물관리법에 신설된 것으로, 새로운 유형의 재활용이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종합 평가하여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허용하는 매우 엄격한 절차입니다.
1차 평가: 한국환경공단 (2021년 6월)
한국환경공단은 환경부 산하 기관으로, 대기환경·수환경·자원순환 등 종합환경서비스를 담당합니다.
평가 항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재활용 제품의 물리·화학적 특성 분석
- 중금속(납, 카드뮴, 크롬, 수은 등) 함량 및 용출 시험
- 대기오염물질(먼지, SOx, NOx 등) 배출량 측정
- 수질오염물질 유출 가능성 평가
- 토양 오염 가능성 평가
3사 연구팀은 방대한 데이터와 안전성 검증 자료를 제출했고, 한국환경공단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최종 평가: 국립환경과학원 (2021년 8월)
국립환경과학원은 환경부 소속 국가 연구기관으로, 우리나라 환경 연구의 최고 권위를 가진 곳입니다.
최종 평가는 1차 평가보다 훨씬 더 엄격했습니다. 작업자의 건강 영향 평가, 주변 주민에 대한 위해성 평가, 장기적인 환경 축적 가능성 등 모든 측면에서 안전성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2021년 8월 31일, 드디어 최종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공식 평가서에서 이 프로젝트를 다음과 같이 극찬했습니다:
“2016년 7월 재활용환경성평가 제도 신설 이후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한다. 그동안 기술적, 제도적 한계로 재활용되지 못했던 폐기물이 이 평가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재활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앞으로도 이러한 혁신적 재활용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기술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본격 적용: 숫자로 말하는 성과
2021년 10월 말부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본격적으로 재활용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량적 성과
형석 수입 대체
- 초기(2021년 10월~): 연간 약 1만 톤 대체
- 목표(단계적 확대): 연간 2만 톤 사용 형석의 최대 50% 이상 대체
경제적 효과
- 현대제철: 연간 형석 구매 비용 수억 원 절감
- 삼성전자: 폐수슬러지 처리 비용 절감 및 재활용 선택지 다양화
환경적 가치
- 연간 1만 톤 이상의 폐기물 재활용 (매립 제로 기여)
- 형석 채굴·운송 과정 CO₂ 배출 간접 저감
- 순환경제 모델 구축으로 자원 자립도 향상
정성적 가치
삼성전자의 ESG 경영 강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삼성전자는 다음과 같은 대외 인증을 받았습니다:
- 환경부 녹색기업 선정
-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 탄소/물/폐기물 저감 인증
- UL社 폐기물 매립 제로(Zero Waste to Landfill) 인증
장성대 전무는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폐기물 재활용률 100% 달성을 목표로 친환경 자원순환기술 개발을 지속함으로써 ESG 경영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현대제철의 친환경 제철소 비전
현대제철은 이번 기술을 “친환경 미래 제철소의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최주태 전무는 “다양한 환경에너지기술로 자원과 에너지의 순환구조를 구축해 유한자원의 한계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현대제철은 이 프로젝트 외에도:
- 소 배설물을 고로 연료로 사용 (온실가스 감축)
- 굴패각을 제철 부원료로 재활용 (연간 35톤 처리) 등 다양한 폐자원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며 순환경제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비결: 3가지 핵심 요인
삼성전자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삼성전자는 자사만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철강 분야 전문가인 현대제철, 재활용 공정 전문가인 제철세라믹과 협업함으로써 각 분야의 노하우를 결합했습니다.
반도체와 철강이라는 전혀 다른 산업이 만나 시너지를 창출한 것은 산업 간 융합의 모범 사례입니다.
2. 철저한 데이터 기반 접근
연구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 성분 분석: XRF, XRD, TGA 등 다양한 분석 기법 동원
- 공정 최적화: 수백 회의 실험을 통한 최적 조건 도출
- 안전성 검증: 광범위한 환경 및 독성 시험
이러한 과학적 접근이 국가 기관의 까다로운 인증을 통과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3. 장기적 관점의 ESG 투자
이 프로젝트는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적인 환경 가치와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1년 이상의 연구개발 기간과 비용을 투자했지만, 그 결과로:
- 기업 이미지 제고
- 규제 대응력 강화
- 투자자 신뢰 확보
- 임직원 자긍심 향상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얻었습니다.
업계에 미친 파급 효과
삼성전자-현대제철의 성공 사례는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 유사 프로젝트 확산
SK하이닉스, TSMC 등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폐수슬러지 재활용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25년까지 재활용·재생가능 소재를 제품 생산에 25%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중앙일보
2. 정부 정책 변화
이 사례를 계기로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 간 폐자원 교환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산업의 폐기물이 다른 산업의 원료가 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매칭하는 시스템입니다.
3. 학계 연구 활성화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반도체 폐기물의 자원화”를 주제로 한 연구 프로젝트가 급증했습니다. KAIST, POSTECH 등은 폐수슬러지뿐 아니라 공정 가스, 연마재 등 다양한 반도체 폐기물의 재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도전과 기회
성공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도전 과제
1. 공급 안정성 확보 반도체 생산량 변동에 따라 폐수슬러지 발생량도 달라지므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재고 관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2. 품질 균일화 지속 장기적으로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공정 모니터링과 개선이 필요합니다.
3. 규모 확대 현재는 현대제철 한 곳에만 공급하지만, 향후 포스코 등 다른 철강사로도 확대하려면 생산 능력을 늘려야 합니다.
새로운 기회
1. 글로벌 확장 삼성전자의 해외 반도체 공장(미국, 중국 등)에서 나오는 폐수슬러지도 현지 철강사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2. 기술 고도화 CaF₂ 외에 폐수슬러지에 함유된 다른 유용 성분(Si, Al, Mg 등)도 추출하여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는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3. 탄소배출권 확보 이 재활용 기술로 절감되는 CO₂를 정량화하여 탄소배출권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폐기물에서 찾은 미래

삼성전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 사례가 아닙니다. 이는 **”쓰레기는 없다, 잘못 놓인 자원만 있을 뿐”**이라는 순환경제의 철학을 실증한 것입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골칫거리였던 폐수슬러지가 철강업계의 필수 광물을 대체하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하지만 삼성전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 문제는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 협업은 혁신의 지름길이다
- 환경 투자는 미래 경쟁력이다
연간 1만 톤의 형석을 대체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는 더 큰 변화의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더 많은 산업들이 이러한 자원순환 모델을 구축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제조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폐수슬러지 속 플루오린화칼슘 이온이 철강재로 다시 태어나는 이 놀라운 변신은, 작은 시작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웅변합니다.
삼성전자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도전의 중심에는 언제나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진정한 ESG 정신이 있습니다.
참고자료:
